로마 12,20은 잠언 25,21-22의 인용한 것입니다. 원수를 잘 대해줄 것과 그리하면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쌓는 셈이라는 내용인데요, 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첫째로, 오리게네스, 아우구스티노, 예로니모, 그리고 몇몇 현대의 주석가들은 ‘불타는 숯’이 수치심으로 인한 괴로움을 상징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원수는 그러한 호의에 마음이 움직여 수치와 회한으로 인한 괴로움이 마치 머리 위에 놓인 숯처럼 타오른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기원후 3세기경 이집트의 종교의식을 보면 뜨거운 석탄 접시를 머리에 올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는 신 앞에서 참회하는 행동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근동 지역의 종교관행으로 미루어 볼 때 20절은 원수에게 잘해 주어 하느님 앞에서 참회의 숯불을 머리에 쌓게 하라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둘째로, 요한 크리소스토모와 테오필라와 같은 그리스 교부들은 ‘불타는 숯’을 복수의 상징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약 원수에게 먹을 것을 주었는데도 그 원수가 여전히 적대적이라면, 원수는 호의를 입은 것으로 인해 하느님으로부터 더 심각한 벌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제 머리 위에 징벌의 숯을 스스로 쌓아올리는 꼴이 됩니다.

문제는 성경 외의 문헌에서는 이러한 상징을 사용한 뚜렷한 사례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징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확실하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구약성경은 원수를 대함에 있어 자선행위를 중하게 여기며 호의로 악을 정복하기를 권하고, 로마 12,21도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위의 첫째 해석이 문맥에 더 잘 맞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권고를 당대의 상징을 빌려 표현한 것이라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 참고도서:
<주석성경 신약>(한국천주교주교회의)
<로마서를 통한 영신수련>(J.A.피츠마이어 지음, 강우석 옮김, 바오로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