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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오로딸 성경학교 작성일 2021-09-23 조회수 150
형제님 견해에 두 가지가 함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누어 생각해보겠습니다.

1. 하느님의 충실하심과 자애는 ‘계약의 선물’이다. 공짜 선물이 아니다.
교재 73쪽 둘째 줄에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 곁에서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언제나 함께하신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약속’의 다른 표현이 ‘계약’입니다. 아득히 먼 창세기의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 그 초대[부르심]에 뿌리를 둔 것으로 하느님이 먼저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인간이 그것을 받아들여 이루어진 것이 계약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충실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하신 ‘약속’에 충실한 분이십니다.
빗나간 이스라엘 백성을 수도 없이 용서하시고, 벌을 주시더라도 다시 찾아오시는 이유는 당신이 하신 말씀, 그 약속에 충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불충실해도 하느님이 충실과 자애를 보이시는 것이므로 인간 편에서 보면 자격이 없는데 받으니 ‘은총(공짜)’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자애가 어느 차원까지 가는가 하면, 불충실한 응답을 보이는(죄를 지은) 인간을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당신을 믿고 다시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하느님의 방식은 그 뿌리가 당신이 주신 약속의 말씀에 한결같이 충실하신 데서 오는 것입니다.
문장을 문맥 전체에서, 즉 ‘충실함’이라는 주제 전체에서 보시면 위 72쪽의 구절이 의도하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 종합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성서신학사전>(광주가톨릭대출판부)의 ‘충실’이라는 항목과, <새로운 성경신학사전>(바오로딸)의 ‘자비’(제3권 1988쪽 이하)를 읽어보시도록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2. “계약으로 본다면, 인간이 하느님을 신뢰하면 무조건 하느님은 좋은 것만 주셔야 하지만...”
- 욥기는 하느님의 충실하심이라는 주제와 다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교재 73쪽에 대한 질문과 함께 다루는 것이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 충실한 의인[욥기는 지혜문학입니다만, 굳이 오경적 표현을 쓰자면 계약에 충실한 인물로 이해할 수 있겠지요]이 겪는 불의한 상황에 대한 물음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신뢰하면 무조건 하느님은 좋은 것만 주셔야 하지만”이라는 것이 욥의 항의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대를 초월해서 모든 신앙인의 항의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 시기와 방법은 인간의 생각과 다릅니다. 인간의 머리로 헤아려질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욥기 결말은 그 깨달음을 고백합니다.
최종 마무리는 욥이 그 이전보다 부요하게 되는 것으로 끝나지요. 이것이 하느님의 충실하심입니다.
끝까지 가봐야 하는 것이랄까요. 욥기는 이 체험을 신앙고백의 설화로 풀어낸 것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