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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오로딸 성경학교 작성일 2021-07-12 조회수 171
교재 299쪽 세 번째 줄에 ‘바다 위에 떠있는 작은 배 안에 함께 있다’는 표현과 반복되는 ‘연대’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창세기에서 인간의 죄가 확대, 심화되는 모습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최초의 살인을 행한 카인의 자손 가운데 하나인 라멕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 상처 하나에 사람 하나를, 내 생채기 하나에 아이 하나를 죽였다. 카인을 해친 자가 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는다면 라멕을 해친 자는 일흔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는다.”(창세 4,24)
이렇게 죄가 있는 곳에 인간의 고통이 생겨나고, 그 고통은 또 다른 죄(앙갚음)를 가져오는데 더 많이, 더 강하게 되어갑니다.
악의 순환고리가 형성되어 거기에 죄 없는 이들도 엮여 들어가게 되는 것이 인간의 역사였습니다.
내가 죄를 안 지어도 다른 이의 죄가 만들어낸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무죄한 사람이 겪는 고통, 죽음이 분명 있습니다.
하느님의 시선과 구원 섭리에는 모든 인간이 담겨있습니다. ‘배 안에 함께 있는 이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자 하시는 그런 마음이랄까요.
예수님은 무죄하지만 인간의 죄악이 만든 고통과 죽음을 그대로 받아 안으며 악의 순환고리를 끊으십니다.
미미해 보이지만, 이것이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죄, 고통, 죽음이라는 순환의 늪에서 빠져나갈 좁은 문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들 시대에 스테파노의 죽음(사도 7,60)을 비롯,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 이와 비슷한 삶을 보여준 이들이 있습니다.
죄가 있는 사람이 고통받고 죽는 것을 두고 ‘죗값을 치른다’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무죄한 이가 겪게 되는 이 죄의 결과들이 하느님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다고 증언해 줍니다.
여기서 ‘고통과 죽음’의 문제가 신비 차원에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비차원이란, 인간의 이성적 능력이나 노력으로 완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는 범주를 포함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죄인을 처단하는 것이 정의라고 믿고, 무죄한 이의 고통에 분노를 느낍니다.
인간의 정의는 하느님의 정의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다른 이가 저지른 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것을 함께 지고가려는 이들을 통해 보복의 순환고리가 끊어지고, 죄인에게도 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죄인도 살게 되기를, 곧 구원하기를 원하시기에 그분의 정의는 자비입니다. 그래서 하느님보다 작은 피조물인 우리는 그 길을 다 깨달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