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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자의 '우문'과 어느 그리스도인의 '현답' - 창세기
작성자 김영석 작성일 2019-08-21 조회수 172
창세기에 대한 “문의 사항” 과 ”답변” 입니다.

1) 창세 1,26-27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문의 사항 : 한 분이신 하느님은 문법상으로 단수인데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에서는
왜 복수로 했을까요? 혹 ‘남자와 여자로’를 염두에 두고 복수로 했을까요?
‘당신의 모습으로’ 에서는 단수로 되어 있네요.

답변 : 복수 형태로 사용된 인칭 대명사 ‘우리’는 창세기 저자 당시의 지배 체제인 왕정제도를
배경으로 한 표현으로, 임금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회의할 때의 모습을
하느님께 유추 적용한 표현(1열왕 22,19; 욥 1,6; 2,1; 38,7 참조)입니다.
또한 실질적인 주어가 단수이면서도 복수 형태로 표현하는 것은 무엇을 결정할 때
깊이 심사 숙고하거나 결의에 찬 행동을 한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서(창세 11,7-8; 이사 6,8 참조)
하느님이 깊이 생각하시고 그 결단에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음을 나타냅니다.
참고도서: <모세오경: 모세와 함께 하는 성경 묵상> (김정훈 지음, 바오로딸, p.61)

2) 창세 2,16-17 ; 창세 3,2-3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의 사항 : 창세기 2장에 하느님께서는 사람(아담)에게만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 고
직접 명령하시고, 하와에게는 직접 명령하시지 않으셨는데, 혹 이점이 하와의 죄악(원죄)에 대한
경감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창세기 3장에 하와는 하느님의 말씀을 아담으로부터 전해 들었음이 간접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에
쓰여진 하느님의 말씀을 읽어 체감하고 이를 일상의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하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요?

답변 : ‘아담’은 고유명사라기 보다는 ‘흙’(히브리어로 ‘아다마’)이라는 말에서 파생된 말로
그냥 ‘사람’을 뜻합니다. 곧 하느님은 ‘아담’이란 한 개인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
‘전 인류’를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라는 진리를
가르치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이 남자인 아담에게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는 뜻으로 읽으셔야 합니다.
신학적인 뜻으로 읽지 않고 그냥 이야기로 읽더라도, 하느님이 아담에게 말씀하실 때 그 자리에
당연히 하와도 있었으리라고 봅니다. 어쨌든 하느님의 명령은 두 사람 모두에게 전해진 것이고,
하와의 죄가 아담보다 덜하거나 더할 이유는 없습니다.

3) 창세 4,8 ; 탈출 20,13 & 21,12
카인이 아우 아벨에게 “들에 나가자.”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카인이 자기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였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사람을 때려서 죽인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문의 사항 : 카인의 아벨 살인 죄악은 십계명에 따르면 사형을 받아야 하나 카인을 살아 남았다.
오늘날에도 사람을 죽인 자에 대한 ‘사형제 폐지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는 율법 위반의
측면도 있으나, 신구약 성경에 나오는 창조주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과
‘이웃 사랑’의 실천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수긍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답변 : 카인 이야기는, 하느님의 사랑을 잃고 타락한 인류는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이웃에 대한
사랑마저 잃어버리게 되고, 그리하여 미움과 질투가 마침내 살인까지 빚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잘못을 저지른 인간도 하느님께서는 끝까지 버리지 않으신다는 메시지도
담겨있지요.)
탈출기의 십계명은 좀 다른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나중에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탈출해 광야 생활을
하게 되는데, 집단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규율이 필요한 법이지요. 그러한 배경에서 적어도
이러이러한 것을 지켜야 하느님과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십계명을 비롯한
여러 규정들입니다.
사형제 폐지의 신학적 근거 중 하나는,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창세 1,26-27)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 모상대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4) 창세 6,4 ; 민수 13,33
하느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한자리에 들어 그들에게서 자식이 태어나던 그때와 그 뒤에도
세상에는 나필족이 있었는데, 그들은 옛날의 용사들로서 이름난 장사들이었다.
우리는 또 그곳에서 나필족을 보았다. 아낙의 자손들은 바로 이 나필족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 눈에도 우리 자신이 메뚜기 같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그랬을 것이다.

문의 사항 : 노아의 홍수로 나필족은 전멸하였는데, 이집트 탈출 후 모세가 광야에서 약속의 땅에
정찰대를 보냈을 때, 정찰대는 전멸한 나필족(아낙의 자손들)을 어떻게 볼 수 있었을까요?
영어 성경에는 나필족 대신 ‘giants’ 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답변 : 창세 1-11장 까지는, 그러니까 아담, 하와, 카인, 아벨, 노아 등은 실존인물이라기 보다는
신화 혹은 설화 속의 인물들이라고 봐야 합니다. 물론 이들이 단순히 꾸민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먼 옛날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들이 자손을 낳고 삶을 영위해가면서
죄도 짓고 회개도 하면서 하느님과 관계를 주고받았겠지요. 그런 인간의 삶을 아담이나 카인과 같은
인물에 담아 표현했다는 의미에서 신화 또는 설화라는 말을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홍수 때 나필족이 전멸했는데 어떻게 모세 시대에 또 나필족이 나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습니다. 창세기 저자는 용사요 이름난 장사들인 나필족이라도 사람에 불과하기에
하느님의 주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5) 창세 42,37 ; 창세 46,9
그러자 르우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제가 만일 벤야민을 아버지께 데려오지 않으면,
제 두 아들을 죽이셔도 좋습니다. 그 아이를 제 손에 맡겨 주십시오. 제가 아버지께 그 아이를
다시 데려오겠습니다.”
르우벤의 아들은 하녹, 팔루, 헤츠론, 카르미이다.

문의 사항 : 창세기 42장에는 르우벤의 ‘두 아들’로 되어 있으나, 창세기 46장에는 네 아들들의
이름이 나와 있다.

답변 : 창세 42,37에서 르우벤이 “제 두 아들을 죽이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해서 르우벤에게
자식이 둘만 있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르우벤이 두 아들을 언급한 것은 라헬의 두 아들,
곧 요셉과 벤야민을 염두에 둔 표현일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 이어 벤야민까지 잃게 된다면
나도(르우벤도) 내 자식 중에서 두 아들을 잃는 슬픔을 맛보겠다는 의미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6) 창세 48,15-16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축복하였다. “저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을 당신 앞에서 살아가게 하신
하느님, 제가 사는 동안 지금까지 늘 저의 목자가 되어 주신 하느님, 저를 모든 불행에서 구해 주신
천사께서는 이 아이들에게 복을 내려 주소서. 나의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이름이
이 아이들에게 살아 있으리라. 또한 이들이 세상에서 크게 불어나리라.”

문의 사항 : 이스라엘(야곱)이 축복한 이들은 요셉의 아들인 에프라임 과 므나쎄 이다. 아들에 대한
축복이 아버지에 대한 축복이 아니라면,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축복하였다’ 대신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에게 축복하였다’ 로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영어 성경에도 ‘Then he blessed Joseph’ 로 나와 있네요.

답변 :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는 자리에서 창세 48,15은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축복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요셉과 그의 두 아들을 한 존재로 혼용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또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지파는 모두 열둘로 형성되는데 그 중에는 에프라임 지파와 므나쎄
지파가 있습니다. 요셉 지파가 에프라임 지파와 므나쎄 지파로 나뉘고, 그 두 지파가 열두 지파에
속하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요셉을 축복한다는 건 그에게서 나온 에프라임과 므나쎄를 축복하는
것과 같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