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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무류성
작성자 교육원 작성일 2016-03-14 조회수 633
바오로딸에서 출간된 <성경 여행 스케치> 책에 저자인 김혜윤 수녀님이 성경의 무류성에 대해 아주 잘 설명해 놓으신 부분이 있어 그 내용을 그대로 옮겨 써 드립니다.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성경의 무류성(진실성)>

‘무류성’이란 성경에 제시된 모든 말씀은 진리이며 ‘오류가 없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혹자는 성경 초두에서부터 오류를 지적할 지도 모르겠다. 창세기를 ‘글자 그대로’ 읽다보면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말이 오히려 분명한 오류임을 즉각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과학지식과 창세기에서 제시하는 창조의 역사가 다를 뿐 아니라 성경 자체도 창조에 대한 두 가지 다른 전승(창세기 1장과 2장이 제시하는 창조가 서로 다름)을 제시하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서로 다르게 보도하는 두 전승 가운데 하나는 틀리거나, 둘 다 틀리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의 관점으로 성경 본문을 본다면 이 관점의 주인공은 ‘창조’ 또는 ‘인류’, ‘지구’가 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은 성경의 본질을 철저히 외면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제시했듯이 성경은 ‘하느님을 계시하는 책’이고, 따라서 이 책의 주인공은 언제나 ‘하느님’이시다. 성경은 일종의 ‘신학 보고서’인 것이다.
이는 성경이, 이스라엘의 역사가 주인공이 되는 ‘역사적 보고서’가 아니며, 또한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나를 제시하는 ‘과학적 보고서’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만약 이스라엘을 주인공으로 하는 문헌이 성경이라면,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하여 모순적으로 보도하는 본문 중 한 본문은 분명한 ‘오류’로 판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이 주인공이 되는 신학 보고서에서는 이스라엘이 어찌 되었건, 이들의 에피소드를 서로 다르게 보도하는 본문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곧 창세기 1장과 2장은 창조를 서로 다르게 보도하고 있지만, 본문의 주인공이 ‘창조’가 아니라 창조를 이루어내신 ‘하느님’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창조 과정이 다르게 보도되어 있다 해서 이를 충돌된 본문으로 간주하지는 않는 것이다.
성경에서 자주 발견되는, 특히 구약성경 대부분에서 발견되는, 같은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본문의 문제는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머리 좋은 성경의 저자 또는 편집자들이 서로 모순되고 충돌되는 내용을 담은 본문을 그대로 함께 공존시켜 두었던 이유는, 그 본문들의 모순됨을 발견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하느님의 계시’라는 신학적 목적에 잘 부합되는 본문이라면, 부차적인 부분이 다소 충돌을 일으킨다 해도 문제삼지 않고 ‘계시된 진리’를 절대적 경외심을 가지고 받아들인 때문이었다.
이런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만화책을 볼 때와 자연과학 관련 논문을 읽을 때 같은 마음자세로 그 문헌을 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소설을 볼 때와 신문을 읽을 때도 독자들은 그 본문이 제시할 내용에 대하여 매우 다른 기대치를 전제하고 내용을 읽게 된다.
똑같이 문학이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지만, 황당하고 허구적인 이야기가 만화나 소설에 들어 있을 때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오히려 기발한 이야기가 나올수록 창의력이 돋보인다고 칭찬한다. 하지만 정직성과 정확함을 생명으로 하는 과학 논문이나 신문에 거짓 이야기가 꾸며져 있음을 발견한다면 모두가 분개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산출되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그 문헌의 속성을 전제하고 글(만화는 만화의 고유성, 신문은 신문의 특성)을 읽어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성경의 속성에 대한 물음이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l 그래야 성경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 시대의 역사적 사건을 그대로 보도하기 위한 역사적 보고서가 아니며 지구의 생태계를 탐구한 과학 보고서도 아니다. 감추인 듯 존재하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인간에게 설명하기 위해 고심한 신학 보고서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그 진리의 잣대를 마치 신문이나 논문을 읽듯이 한다면, 이미 성경이 어떤 책인지 그 본질조차 모른 채 접근하는 우를 범하는 꼴이 된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인간 사랑을 서술한 책이 성경이고,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성경은 한 치의 오류도 없는 본문으로 이루어졌기에 이러한 단서를 결정적 준거로 하여 우리는 성경이 ‘무류’하다 말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김혜윤 지음, [성경 여행 스케치 1], 바오로딸, 2007, p.62-p.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