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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승 용어에 대해
작성자 교육원 작성일 2012-03-12 조회수 883
다음은 성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자료실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어떤 분이 '수도자', '수도승'이란 용어 사용에 대해 비슷한 질문을 하신 적이 있나 봅니다.
왜관 수도원 신부님의 답변이 좀 길긴 하지만 설명이 아주 상세하게 되어 있어 이해에 도움이 되실 것 같아 그대로 여기에 올려 드립니다.

저희가 동영상에 올린 그림이 15세기경의 그림이기 때문에 수도승이란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아 '수도승'이라 표기하였습니다. 아래 설명을 함께 보시면 더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
+그리스도 안에 평화

주님 안에 친애하는 ...형제님께,
형제님께서 올리신 글을 잘 보았습니다. '수도승'이란 용어와 관련하여 형제님께서 솔직하게 문제 제기를 해주셔서 이에 대해 먼저 감사드립니다.

형제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수도승'이란 우리말 표현은 한국 가톨릭 교회 안에서 다소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용어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사실 이 용어는 현재 교회 안에서 Religiosus(라), Religious(영), Religieux(불), Religioso(이) 등과 구분되어 사용하고 있는 용어인 Monachus(라), Monk(영), Moine(불), Monaco(이)의 우리말 번역으로는 그리 완전하고 적합한 용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이 불교에서 사용해 온 용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 안에서 정서적으로 충분히 어떤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데에는 나름대로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제부터 형제님께서 지적하신 문제들에 대한 해명과 나름대로의 소견을 밝혀보겠습니다.


1. Monachus와 Religiosus의 구분된 사용

현행 교회법전(1983년)의 라틴어 원문을 보면 Monachus와 Monialis를 Religiosus와 Religiosa로 분명하게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고, 또한 위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영어, 불어, 이태리어 등 라틴계통의 현대어들에서 역시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냥 모두 Religiosus건 Monachus건 하나의 단어로 통일하여 사용하면 되는데 왜 구태여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까? 형제님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기에는 우리가 그냥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어떤 중요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각 용어가 지니고 있는 고유의 역사적인 배경과 그 내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바로 그냥 단순하게 하나의 용어로 통일해 버릴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안에서 Monachus(라)란 초기 그리스도교 수도생활 전통, 더 정확히 말하면 사막의 은수자들이나 독수도자들의 수도전통을 따르는 수도회들에 속한 수도자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반면 Religiosus(라)란 Monachus까지 담고 있는 보다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있지만, Monachus 와 구분하여 주로 13세기 이후에 생겨난 그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수도생활(예, 탁발 수도회: 도미니꼬회, 프란치스꼬회, 깔멜회; 예수회; 예수회 이후 생겨난 오늘날의 대부분의 수도회들)을 하는 수도회들에 속한 수도자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Monachus라 할 때 일반적으로 베네딕도회 총연합에 속한 수도회들(예, 까말돌리회, 발롬브로사회, 올리베따노회, 실베스트로회, 등등)과 씨토회, 트라피스트회, 카르투시오회에 속한 수도자들을 일컫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Monachus 들이 하는 생활(Vita monastica)과 Religiosus 들이 하는 생활(Vita religiosa)가 무엇이 다르냐고요? 이에 대해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2. Vita monastica 와 Vita religiosa 의 차이

편의상 Vita monastica를 '수도승생활'로, 그리고 Vita religiosa를 '수도생활'로 해두겠습니다. 먼저 초기 그리스도교 수도생활 전통을 따라 사는 '수도승생활'과 그 외 13세기 이후에 생겨난 새로운 형태의 '수도생활'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전자는 어떤 어떤 특별한 사도직 활동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을 찾는 삶'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반면, 후자는 어떤 특정한 사도직 활동(설교, 의료봉사, 메스미디어, 선교, 사회활동, 본당사목 등등)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수도승생활 전통을 따르는 수도회들의 경우는 어떤 특별한 창설 목적이 없습니다. 있다면 끊임없는 기도와 고행과 고독을 통해 '하느님 찾음'(Quaerere Deum)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를 더욱 철저히 추종하고 오로지 하느님만을 찾기 위하여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사막이나 광야로 들어간 은수자들이나 독수자들의 삶의 전통을 잇는 수도생활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그 외 다른 수도회들의 경우는 어떤 특별한 창설 목적(이것을 흔히 그 회의 카리스마라고 표현하지요)이 있다는 점입니다.


3. 우리말 '수도승'이란 용어 사용과 관련하여

저희가 현재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이유는 솔직히 말하자면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Monachus, Vita monastica 란 용어가 지니고 있는 그 고유의 전통과 내용을 담을 만한 우리말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수도승'이란 말도 그 말이 불교에서 먼저 사용해온 용어라는 점과 한국 가톨릭 교회 안에 있는 우리에게 그 말이 주는 부정적인 뉘앙스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정서 때문에 그리 적절한 번역은 아니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실제 이 용어는 저희만이 유별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행 교회법(1983년) 안에서도 역시 Monachus(라)를 '수도승'으로, Monialis(라)를 '수녀승'으로, 그리고 Monasterium을 '수도승원'으로 각각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교회법전 609조 2항; 613-616조; 616조 4항; 620조; 625조 2항; 628조 2항; 630조 3항; 637조; 638조 4항; 667조 2-4항; 684조 3항; 686조 2항; 688조 2항; 690조 2항 참조). 한국 가톨릭 교회 안에서도 이미 사용해온 말인 것입니다. 아마도 한국 교회에서도 역시 Monachus 란 말의 본래 의미에 그래도 비교적 가까운 우리말을 '수도승'이라고 생각했던가 봅니다. 어찌 보면 이 말은 하나의 차선책이라 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수도승이란 말을 고집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혹시 보다 더 적합하고 본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우리말을 발견한다면 그 말로 사용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형제님께서 이에 대해 고견을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더 없이 감사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구태여 '수도승'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데는 또 다른 동기가 있습니다. 즉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신원에 대한 의식이 확고할 때 거기에 따른 본래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결코 다른 수도자들에 대한 우리 자신의 우위성을 드러내려는 일말의 교만이나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신비체' 등으로 표현하였지요.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교회를 이루는 하느님의 백성,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이 백성 안에는 높고 낮음도, 귀함도 천함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느님 앞에 동등합니다. 다만 각자 자기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몸의 각 지체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몸은 건강하고 성장해 나갑니다. 만일 지체가 자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몸은 불구가 되겠지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이 용어를 차선책으로나마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도승이란 용어가 불교에서 먼저 사용해 왔다고 해서 우리가 사용할 수 없고 또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종교는 그 문화에 뿌리를 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문화의 바탕은 불교와 유교 문화입니다. 그 문화에 토착화하지 못한 종교는 영원히 이방의 종교로 머물 것이고, 참된 복음화에도 기여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제가 알기론 현재 가톨릭 교회 안에서 사용되고 있는 성당, 감실 등 적지 않은 용어들도 따지고 보면 불교 용어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의 논리에 따른다면 이러한 용어들도 제고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아는 예수님은 타 문화와 종교에 폐쇄적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마음은 그렇게 좁지 않으셨다고 믿습니다.


4. 호칭 문제와 관련하여

형제님께서는 왜관 수도원 수사님들을 그럼 "아무개 수도승님"이라고 불러야 하느냐고 이의를 제기하셨습니다. 그러나 '수도자', '수도승'이란 말은 호칭이 아니라, 신원을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우리가 "아무개 수도자님"이라고 하지 않지요. 다시 말해 '성직자', '평신도'와 같은 맥락의 신원을 구분하는 용어입니다. 호칭을 위해서는 현재 우리 교회에서는 "수사님", "수녀님"으로 정착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부를 때는 그냥 "아무개 수사님"이라고 하면 됩니다.


형제님께서 제기하신 문제에 대한 답이 되었나 모르겠습니다. 그러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혹시 아직도 부족한 것이 있다면 언제 시간이 나실 때 저희 집에 한 번 방문하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결코 감정적으로 접근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객관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접근할 때 모두에게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다시 한번 형제님의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의 평화와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원하며 이만 맺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2002년 2월 3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서
허 로무알도 신부 드림

* 출처: [성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자료실]